동양그룹 이양구 창업주
미국 출장 중 영감 얻어 출시
중국 등 해외서도 인기 제품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바로 오리온 ‘초코파이’의 CM송이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과자 ‘초코파이’는 동그란 비스켓 사이에 마시멜로를 끼우고 초콜릿을 입힌 것으로, 그 달콤한 맛은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
이 초코파이는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바로 동양그룹의 창업주 이양구 회장이다. 동양그룹은 1957년부터 2016년까지 존속한 중공업 및 금융특화 기업인데, 초코파이를 만들었다니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이양구 회장의 초코파이 이야기를 알아보자.
1916년 북한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이양구 회장은 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한 것을 시작으로 사업을 배웠다. 22살 어린 나이에 식품 도매상 ‘대양공사’를 세워 돈을 모았지만, 한국전쟁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부산으로 피난 온 이양구 회장은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부산과 마산, 대구 등지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릴 정도로 막대한 돈을 모은 그는 풍국제과를 인수해 ‘동양제과’로 재창립했다. 또, 당시 국내 시멘트 산업 1위인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시멘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1957년에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로 변경한 뒤 ‘시멘트 왕국’을 건설했지만, 이후 신규 업체들이 대거 진입하면서 왕국이 흔들렸다.
이에 이양구 회장은 시멘트 산업으로 소홀했던 동양제과에 다시 매진했다. 1970년대 초, 이양구 회장은 미국 출장 중에 공항 편의점에 들르게 된다. 당시 미국의 국민 간식인 ‘문파이’를 사서 돌아오는 항공편에서 먹어본 그는 시장성이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한다.
이양구 회장과 동양제과 직원들은 2년여에 걸친 실험과 개발을 통해 수많은 시제품을 만들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74년 4월 초코파이가 출시됐다. 지금이야 유사품이 나오는 등 흔한 형태이지만, 당시 국내 제과업계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과자였다. 제품이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서 없어서 못 팔았다고 한다. 출시 첫해 약 10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자 이양구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0년대 공산권 국가인 중국, 러시아(당시 소련), 베트남 등에 초코파이를 수출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이 회장은 중국엔 10억 명의 소비자가 있으니 이들 대상으로 하면 어마어마한 제과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 것이다.
동양제과의 몸집이 더 불어나고 있을 때, 198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양구 회장은 결국 1989년 7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듬해까지 국내에서만 약 2,450억 원 상당의 제품을 판매해 단일 과자 제품으로는 역대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양구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10년 후인 1997년에 드디어 초코파이가 서해를 건너 그의 목표였던 중국에 진출했다. 제과분야의 한류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 초코파이는 아직도 중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중국 연매출 2,000억 원을 넘어섰으며 ‘중국 브랜드 파워지수’(C-BPI) 파이 부문에 6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망 몇 년 전부터 그의 둘째 사위 담철곤 사장이 동양제과를 총괄했었는데, 이 회장 사후 담철곤 사장은 기업을 물려받고 2001년 동양그룹에 분리해 나와 오리온그룹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제과업계 단일제품 사상 최초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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