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독특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마카오 박, 남궁민수, 박충숙 등 비범한 창의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들의 이름이 참 많죠.
관객들은 ‘이런 이름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은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작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예니콜, 마카오박, 팹시
<도둑들> 작명
지난 2012년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도둑들>에는 ‘저게 이름이라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특이한 이름들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관객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독특하고 재미있는 별명을 붙이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극중 김윤석 배우가 연기한 ‘마카오 박’이라는 캐릭터명은 그가 과거 마카오에서 하룻밤에 88억을 땄다는 전설로 인해 불리게 되는 이름입니다. 이는 과거 방영했던 드라마 ‘왕릉일가’ 속 인물인 ‘쿠웨이트 박’이라는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것입니다.
<도둑들>의 금고털이 범의 이름인 ‘팹시’에도 재미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이 역할을 연기한 사람은 바로 배우 김혜수인데요, ‘팹시’라는 이름은 김혜수의 실제 애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최동훈 감독이 김혜수를 ‘혜수 씨’라고 부르다가 ‘헤스 씨’가 되고, 그 다음 ‘헵시’ 에서 ‘팹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우 전지현의 극중 이름 ‘예니콜’은 범죄가 부르면 언제든지 ‘예~’하고 달려간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합니다. 또 이정재가 연기한 ‘뽀빠이’는 최동훈 감독이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름이지만 상표명이라 쓸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최 감독은 <도둑들>로 오랜 숙원도 이루고 흥행도 성공하게 되었네요.
냄궁…민수?
설국열차의 ‘남궁민수’
영화 <설국열차> 속 송강호가 연기했던 주인공 ‘남궁민수’는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쉽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죠. 봉준호 감독은 이 인물의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일부러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고 어려운 이름을 찾다가 ‘남궁민수’라는 이름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또한 같은 영화에 출연한 어른이 된 빌리 엘리어트, 제이미 벨이 연기한 캐릭터죠. ‘에드가’라는 인물의 이름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베이비 드라이버>, <새벽의 황당한 저주>등의 영화로 유명한 감독 에드가 라이트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봉준호 감독과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서로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다 계획이 있었던
‘기생충’의 작명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비롯해 전 세계에 우리나라 영화를 알린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작품, <기생충>. “아들아, 넌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영화 속 송강호의 명대사처럼, ‘봉테일’ 봉준호 감독답게 인물들의 이름에도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각본집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첫 번째는 배우 이정은이 연기한 박 사장네 가사도우미인 ‘문광(門光)’의 이름에 대한 내용입니다. 문광이라는 이름은 ‘문을 열고 미친 사람이 들어온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극중 문광이 비 오는 날 박 사장네 초인종을 누르게 되면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 사장네 집 현관문을 처음 열어주는 사람, 지하실의 문을 여는 사람 또한 문광이었습니다.
문광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지하실에 사는 남자, 근세(박명훈)의 이름은 세금 중 하나인 갑종근로소득세에서 따온 것입니다. 송강호가 분한 기택의 이름은 과거 7선 의원이었던 고(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이름을 떠올려 지었다고 하네요.
또 봉준호 감독은 기택의 아내 ‘충숙’의 이름을 ‘태릉선수촌에서 볼 법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처음 장면에는 ‘박충숙’이라고 적힌 해머던지기 대회 은메달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설국열차>와<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의 특이한 작명 센스가 드러납니다.
장진 감독의 상연, 하연 사랑
전문 킬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킬러들의 수다>, 그리고 따뜻한 형제애를 코믹하게 보여주는<우리는 형제입니다>. 두 영화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킬러들의 수다>의 신현준, 원빈 형제와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조진웅, 김성균 형제는 상연, 하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영화 속에 나타나는데요. 장진 감독의 말에 따르면 <킬러들의 수다>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그래서 스토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배우가 직접 지은
영화 속 이름들
또다시 장진 감독입니다. 2010년 개봉작인 <퀴즈왕>은 등장인물의 이름은 출연 배우가 직접 지은 것들입니다. 김수로가 연기한 ‘이도엽’이라는 이름은 본인의 조카 이름이고, 한재석과 류승룡은 자신들의 매니저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중국집 배달원 역할을 맡은 배우 류덕환은 ‘오토바이 철가방 폭주족’을 줄인 ‘오철주’라는 이름을 이용해 재치를 보여주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연출, 각본, 음악 등 중요한 요소들은 참 많습니다. 재미있는 인물의 이름 하나로 영화가 기억되기도 하는 만큼 캐릭터의 이름 또한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또 인물의 이름을 짓는 방법을 통해 각기 다른 감독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기도 하죠. 영화 속 이름에 대한 뒷이야기를 알아보는 것도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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