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성장기를 보낸 할리우드 스타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유년기와 십 대 시절에 겪은 스타들, 그럼에도 인생역전을 이루어 낸 스타들은 누가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그들이 그 어려움을 이겨냈는지 살펴본다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지 않을까.
1. 외할머니를 친엄마로, 친엄마를 누나로 알고 살았던 잭 니콜슨
▲오른쪽이 잭 니콜슨의 어머니 준 프랜시스 니콜슨
할리우드의 대표 연기파 배우였던 잭 니콜슨의 유년기는 참으로 애처로웠다. 잭 니콜슨의 모친 준 프랜시스 니콜슨은 1937년 10대 시절 무대의 쇼 걸로 활동하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남성과 눈이 맞아 한순간의 사고로 잭을 낳게 된다. 하지만 잭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잭과 모친을 모두 버린 채 도망갔고 그의 모친은 잭을 자신의 부모에게 맡기며 직접 양육비를 벌어야 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손에 길러진 탓에 잭은 자신을 양육해온 외할머니를 친엄마로, 친엄마를 누나로 알고 자랐다.
▲<차이나타운> 시절의 잭 니콜슨
잭 니콜슨이 자신의 숨겨진 가정사를 알게 된 시기는 1974년, 그의 나이 37세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차이나타운>으로 스타급 연기자의 반열에 오른 때였다. 그의 가정사의 배경을 취재하던 타임지의 기자에 의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자신의 슬픈 가정사를 알게 된 잭 니콜슨은 큰 충격에 빠졌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으며 건넨 첫 마디는 “와 우리 집은 연기가 유전이었구나!”였다. 진실을 숨긴 가족의 선택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정된 성장을 위해 진실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어머니와 조부모의 고통스러운 선택을 이해하며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 15세 부터 소년 가장 이었던 짐 캐리
짐 캐리의 십 대 시절은 그 본인조차 되새기고 싶지 않은 시기였다. 회계사인 그의 아버지가 그의 나이 15살에 갑작스럽게 실직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살던 집을 나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해야 했던 캐리는 어려운 집안 살림을 보태기 위해 학업보다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자리를 구하던 아버지가 가족 전원이 들어와 일한다는 조건으로 타이어 공장 근처의 조그만 방을 얻게 된다. 졸지에 그의 부모와 그를 포함한 삼 남매는 타이어 공장의 직원이 되었고, 캐리와 형제들은 낮에는 학교를, 저녁에는 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10대 스타이자 소년 가장 시절의 짐 캐리 모습
기술이 부족했던 어린 소년 캐리는 공장 수위와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도 어렸을때부터 꿈꿔온 코미디언의 꿈을 이루기 위해 15세의 나이에 아마추어 코미디언으로 활동한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위해 노력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에게 올인 하다시피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16세의 어린 나이에 성공한 캐리는 20세에 TV 무대에까지 진출해 어려운 집안 환경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
3. 살인범 아버지 때문에 힘든 시기를 지내야 했던 우디 해럴슨
배우 우디 해럴슨은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두 형제를 키우며 고생한 홀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깊은 효자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증오와 안타까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한평생 그와 형제들을 홀로 키워야만 했던 배경에는 상습 범죄자였던 아버지가 있었다. 폭력, 살인을 저지르며 인생의 반을 감옥에서 보낸 그의 아버지는 바로 1979년 연방법원 판사 살해범으로 알려진 찰스 해럴슨이다. 그 사건으로 아버지 찰스는 무기 징역을 선고받게 되고, ‘슈퍼맥스’라는 흉악범 전문 감옥에 투옥되어 2007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우디 해럴슨의 범죄자 아버지 찰스 해럴슨
우디 해럴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가 7살 때 이혼하게 되었고, 수시로 감옥을 드나드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좋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살인범이자 범죄자의 아들이란 멍에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가 아버지가 남긴 상처에 방황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어머니의 지극정성 덕분이었다고 고백하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4. 가난과 성적 학대로 고통스러운 십 대를 보낸 애슐리 쥬드
원조 미녀 배우 애슐리 쥬드는 유년기부터 아주 많이 가난했다. 컨츄리 가수인 어머니와 언니가 생계를 책임졌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전기, 수도, 전화도 없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심지어 비누까지 만들어 써야 했으며, 식료품비를 아끼기 위해 채소를 길러야 했다. 남들과 같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시기는 그녀가 20살이 되던 해로, 어머니와 언니가 뒤늦게 성공한 때였다.
하지만 십 대 시절 그녀의 시련은 가난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상처로, 15살 때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강간을, 16살 때에는 또 다른 성인 남성에게 성추행을,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가까운 친척에게까지 성적 학대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러한 고난과 아픔을 대학 시절 공부와 연기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하였고, 지금의 헐리우드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2011년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이 담긴 자서전을 출간할 당시 “내 책이 성적 학대를 겪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 진실을 말할 힘을 갖길 바란다”고 말하며, 성적 학대로 고통받는 이들을 도우려 했다.
5. 철없는 부모들 때문에 방황기를 보낸 드류 베리모어
드류 베리모어는 여섯 살의 나이에 [E.T]의 아역으로 출연하며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소녀는 정작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배우인 아버지 존 드류 베리모어는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나갔으며, 엄마 일디코 제이드는 딸의 인기에 취해 파티와 알코올에 중독되어, 딸의 육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에 여섯 살의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대중과 매스컴의 관심은 어린 드류를 너무 힘들게 만들어 9살에 술을, 10살에 마리화나를, 12살에 코카인에 손을 대다 14살에 자살 시도까지 경험하게 되었고, 십 대 시절부터 재활원 생활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어린 시절 드류 베리모어와 대부였던 젊은 스티븐 스필버그
그런 방황하던 드류에게 손을 내민 이들은 다름아닌 그녀의 대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대모인 소피아 로렌이였다. 그들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은 드류가 방황기를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다시 성인 배우로 돌아와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친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열심히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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