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의 인기를 누린 배우가 있습니다. 그녀가 드라마에서 착용한 액세서리는 다음날 바로 완판되었고 그 시절 여성들은 한 번쯤 그녀의 스타일을 따라 했죠. 빼어난 외모 덕분에 세계적인 사진작가 파울로 로베르시와 협업한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한데요. ‘아름다움’의 명대사이지만 스크린에선 부진한 성적을 거둔 그녀의 연기 인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방극장에서의 독보적 인기

김희선은 1992년 ‘고운 얼굴 선발대회’에서 대상 수상 이후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합니다. 광고와 SBS 인기가요 MC로 활동에 박차를 가한 그녀는 1993년 SBS 청소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하죠.

1995년 <바람의 아들>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이후 자신만의 발랄한 이미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출연한 드라마 중 8편의 시청률이 모두 30%를 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하는데요.

그녀의 ‘대박 작품’으로 손꼽히는 <미스터 Q>로 22살 나이에 연기대상을 수상합니다.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최연소 대상 수상 기록이죠. ‘김희선 신드롬’까지 탄생하며 연속극 부분에선 그녀의 인기를 따라올 배우가 없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스크린에선 좋지 못한
흥행 성적

어린 나이에 드라마로 ‘역대급’ 커리어를 쌓은 그녀는 영화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되죠. 1997년 첫 스크린 도전 작품인 <패자부활전>은 장동건과 호흡을 맞추어 화제가 되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합니다.

2년 후 다시 <카라>라는 작품으로 영화에 도전하는데요. 당시 영화사는 김희선이 주인공인 것처럼 내세워 영화를 홍보하지만 그녀는 주인공급 비중이 아니었으며 다시 영화 흥행에 실패합니다. 같은 해 개봉한 <자귀모> 또한 ‘사후 세계’라는 색다른 소재와 화려한 출연진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거두죠.

2000년 출연한 <비천무>는 그해 관객 순위 3위를 거두어 기록 면에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당시 최악의 영화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원작에 한참 못 미치는 퀄리티로 혹평을 받은 것이죠. 영화 자체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김희선의 연기력이 논란되기도 했는데요. 드라마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발랄한 캐릭터만 연기했지만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야 하는 영화에선 소화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김수현 작가도 인정한
‘인생작’ 한 편

그녀가 도전한 4편의 영화 모두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은 한편, 김수현 작가도 인정한 그녀의 ‘인생작’을 만나게 됩니다. 2001년 개봉한 멜로 영화 <와니와 준하>인데요. 주진모, 김승우, 최강희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김희선 영화 인생 중 첫 호평을 받게 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이복 남매의 사랑, 동거 등 당시 생소한 소재를 다루어 관객 수가 높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회자되었죠. 잔잔하고 아날로그적인 분위기에 김희선의 연기가 잘 녹여졌다는 평이 많았는데요. 일본 영화의 감성을 뛰어넘는 국내 영화로 평가받으며 김희선은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3년 개봉한 차기작 <화성으로 간 사나이>가 다시 흥행에 실패합니다. 이후 2005년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 2011년 <진국: 천하영웅의 시대> 두 편의 중국 영화 출연을 끝으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멈추게 됩니다.

김희선은 27편의 드라마 출연과 주연 드라마 최고 시청률 52.7%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가 없어 아쉬운 배우입니다. 그녀는 현재 SBS 드라마 <앨리스>에서 1인 2역을 맡아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는데요. 데뷔 28년 차인 현재에도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주는 그녀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