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영화에 한국어, 또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나올 때의 반갑고 뿌듯한 기분, 다들 느껴보셨죠? 실제로 영화 <블랙팬서>는 ‘부산 아지매’를 맡은 배우의 서툰 한국어 사투리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외국 배우의 어설픈 한국어 대사는 영화의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소개할 영화는 좀 다릅니다. 어설픈 한국어 대사 하나로 ‘국뽕’에 제대로 취하게 해줄 영화인데요. 이 영화에 한국어가 나온 특별한 이유,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포드V페라리>

영화 <포드V페라리>는 재미와 감동, 완성도까지 모두 잡아낸 영화입니다. 기생충과 더불어 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 올랐던 작품인데요. 무려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죠. 영화는 음향편집상과 편집상을 수상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레이싱 영화

<포드V페라리>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싱 대회이자,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출전 경험조차 없는 ‘포드’는 대회 6연패를 차지한 ‘페라리’에 대항하기 위해,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를 고용합니다.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인 레이서 ‘켄 마일스’도 파트너로 영입하죠. 그러나 포드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레이스를 펼치기를 강요하는데요.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레이스를 보여주죠.

레이싱 영화에 깜짝 등장한
서툰 한국어

<포드V페라리>

그런데 이 레이싱 영화에 한국어가 나온다니, 놀랍지 않으신가요? 영화 <포드V페라리> 속 한 장면에서 캐롤 셸비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이 뜬금없이 한국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는 서툰 한국어로 “아령하쉐요~ (안녕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맷 데이먼이 한국어로 인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영화를 관람할 한국 팬들을 위해서일까요?

정답은 한 한국인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캐롤 셸비의 회사 <Shelby American>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몸담았던 ‘John chun’이라는 한국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였죠. 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한 자동차 회사와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John chun,
그는 누구인가?

John chun의 한국 이름은 전명준입니다. 그는 1928년 태어나 북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요. 엔지니어 출신인 아버지의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라”는 말씀에 따라 서울에 있는 삼촌 집에서 생활하게 되죠. 열심히 공부한 그는 결국 22살이 되던 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해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던 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건데요. 그 후 1953년 6.25 전쟁은 휴전 협정을 맺으며 휴전 상태가 되었죠. 이 때문에 전명준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요. 결국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던 친구의 권유로, 1957년 미국으로 이민을 선택합니다.

전명준의 능력을 알아본
한 대학 교수

<실제 전명준의 디자인>

이민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한국에서의 학위가 인정되지 않아 영어와 기술을 배울 겸 그는 섀크라멘토에 있는 <Junior college>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전명준의 능력을 알아본 한 교수는 “기계를 다루는 능력도 뛰어나고, 디자인 감각도 좋으니 자동차 디자이너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한 대학을 추천해 주었는데요.

<실제 전명준의 디자인>

그 대학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디자인과가 있는 <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ACCD)>였습니다. 전명준은 한국인 중 최초로 이 학교를 나온 인물이기도 하죠. 전명준은 등록금을 내기 위해 농업 장비 회사인 <International Harvester>라는 회사에서 정비사로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졸업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30대 중반의 나이와 이민자 신분의 그가 취업하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Shelby American과
전명준의 만남

<셸비 아메리칸>

전명준은 Ford, GM, 크라이슬러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는데요. 당시 Shelby American의 수석 엔지니어 Fred Goodell이 전명준의 능력을 높이 사 채용을 결정했죠. 그때의 Shelby American은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했던 ‘캐롤 셸비’가 창립한, 고성능 자동차를 제조하는 신생 회사였습니다. 포드 엔진을 얹은 셸비 코브라와, 머스탱의 고성능 버전을 한창 개발 중이었죠.

그렇게 Shelby American에 입사하게 된 전명준은 LA 공항의 한 격납고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머스탱 차량이 있었는데요. 회사에서는 그에게 차량 하나를 주며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봐라” 라고 말하죠. 고성능 머스탱을 만들기 위해서는 엔진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머슬카스러운 이미지를 주어야 했는데요. 기계 쪽에도 능통했던 전명준은 다른 디자이너에 비해 이해력이 높았기에, GT카의 전반적인 디자인권을 위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히 레전드라 불릴
전명준의 디자인

<셸비 머스탱 GT350>

<실제 전명준의 디자인>

<1967년형 GT500>

1967, 1968, 1969년형 GT350과 GT500의 디자인은 그가 만들어낸 작품인데요. 전명준이 디자인한 셸비의 GT들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죠. 전설적인 차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앰블럼 디자인에도 재능을 보였는데요. 셸비 머스탱의 기존 코브라 앰블럼을 교체하기 위해 무려 6개월 간 코브라의 움직임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실제 전명준의 디자인>

Shelby American을 떠나고, 몸값이 많이 오른 전명준은 Ford와 크라이슬러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는데요. 크라이슬러로 이직해 Dodge Charger, Runner 등의 모델 작업을 맡았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개발할 때 자문을 주기도 했죠.

은퇴 이후 그의 삶

그는 은퇴 이후 작은 음식점을 차리며 여생을 보내다 2013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2년 미국 미네소타의 한 지역신문 인터넷 기사에 전명준의 인터뷰가 실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평생 그가 세운 업적에 대해 알 수 없었을 테죠.

전명준은 영화에서도 그를 기릴 정도로 미국 자동차계 역사의 일부분에 엄청난 기여를 한 사람입니다. 영화 <포드V페라리>를 관람하신 분, 혹은 관람할 생각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전명준의 이야기를 알아두고, 그를 기억하며 보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