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의 신화를 쓴 충무로의 살아있는 전설.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은 세계 영화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비단 그의 영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가 보여준 달변과 센스 있는 수상소감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매료시켰죠. 바로 그런 말솜씨 덕분에 화제가 된 영상이 있습니다.

봉준호의 영화, 디테일과 삑사리

<살인의 추억>
<아카데미 시상식>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용화 속 치밀한 디테일에 혀를 내두르곤 합니다. <기생충>에서는 박 사장 집의 고급스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일부러 열고 닫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쓰레기통을 구매하기도 했죠. <살인의 추억>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에 어울리도록 농협 마크가 있는 수첩을 어렵게 구하기도 했습니다. 관객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사소한 디테일에까지 신경 쓰는 봉준호와 디테일이 합쳐져 탄생한 ‘봉테일’이란 별명은 정말 찰떡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괴물>
<설국열차>

봉준호의 영화 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삑사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봉준호 감독은 늘 영화 속에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의도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실수하거나 긴장감이 어그러지는 장치를 심어놓습니다. <괴물>에서 남일이 괴물에게 화염병을 던지려는 순간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깨진다거나 <설국열차>의 하이라이트인 전투신에서 커티스가 생선을 밟고 넘어지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죠.

<괴물>
<마더>

봉준호 감독의 삑사리는 언뜻 어이없고 허무한, 이해할 수 없는 실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치는 최고조에 다다른 관객의 긴장감을 살짝 이완시키는 동시에 다음 장면에 더 큰 긴장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관객은 다음 장면에서 등장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삑사리를 해결할 것인가 기대하게 되죠.

봉준호가 손석희에게 던진 질문 하나

<옥자>

2017년 6월 15일, 봉준호 감독은 <옥자> 홍보차 JTBC 뉴스룸 ‘대중문화 인터뷰’에 출연합니다. 인터뷰어는 메인 앵커 손석희였죠. 차분하게 <옥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 후, 봉준호는 조심스럽게 손석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작년 2016년 10월 24일 7시 59분에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손석희는 이에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단지 준비한 것을 보도해야 된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든 대화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16년 10월 24일은 바로 최순실 박근혜의 국정 농단 게이트의 불씨가 된 태블릿 PC가 최초로 보도되는 날이었습니다. 봉준호는 뉴스 시작 직전 7시 59분,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을 사건을 최초 보도하는 앵커의 심정을 물어봤던 거였죠.

손석희의 간결한 대답을 들은 봉준호는 당시의 순간을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약 3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10월 24일 이후 약 1년 만에 당시의 심정을 공식적으로 물어본 대담한 봉준호와 담담하게 최초로 당시의 심정을 밝힌 손석희의 대화는 국민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인터뷰가 보도되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10월 24일’이 오르기도 했었죠.

네티즌들은 ‘정말 센스 있는 질문이었다’, ‘나도 그때의 손석희 앵커의 심정이 궁금했다. 마침내 알게 되어서 속이 시원하다’,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등 봉준호 감독의 시의적절한 질문에 환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손석희 앵커의 대답에도 ‘대단한 프로의식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세상을 바꿔준 보도 정신에 감사드린다’ 등의 반응을 보였죠. 일각에서는 ‘저 질문하려고 출연한 거 같은데’, ‘봉준호 감독이 차기작 준비를 위해 물어본 거 아니냐’처럼 봉준호 감독의 질문 의도를 점치기도 했습니다.

2년 뒤, 다시 만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이 인연이 덕분이었을까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는 JTBC 소속의 서복현, 심수미 기자가 출연하기도 했었죠. 2년 만인 2019년 봉준호 감독과 손석희 앵커는 JTBC 뉴스룸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이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어색한 뉴스장면, 보도장면을 피하기 위해 실제 뉴스 스튜디오와 기사를 섭외했다고 밝혔습니다.

<설국열차>
<옥자>

동시에 봉준호 감독은 칸 황금종려상 수상 후 귀국하자마자 바로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다며 차기작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밝히지 않았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무척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작품이 하나 있고요. 또 미국 영화도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며 2편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영화로 또다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줄지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