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카메라 뒤에서 메가폰을 잡고 고함을 치는 모습을 떠올리셨나요? 반대로 봉준호 감독처럼 더벅머리의 예술가를 떠올린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화감독을 독선적이면서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한편으로는 대하기 어려운 예술가로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 소탈하면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예능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바로 장항준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이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꿈꾼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울예전을 졸업한 후 방송국의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죠. 심지어 예능프로의 작가였으니, 영화계는 그에게 먼 나라 이야기이기도 했었죠. 그러던 중, 서울예전의 동기이자 친구인 장진 감독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식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장항준은 본격적으로 영화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박봉곤 가출사건>

<북경반점>

작가로써 장항준의 성공은 비교적 일찍 찾아옵니다. 첫 시나리오 작인 <박봉곤 가출사건>이 백상예술대상의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이죠. <박봉곤 가출사건>은 일상의 소소함과 특유의 코미디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으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1999년, 차기작인 <북경반점>이 흥행에 참패한 것입니다. 결국 장항준은 작가의 커리어를 접고 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장항준 감독의 데뷔작인 <라이터를 켜라>는 당시<맨 인 블랙>,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과 경쟁했지만 130만 관객을 동원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라이터를 켜라>는 신파 요소를 배제하고 주조연 모든 배우들이 배역을 잘 소화한 풍자 코미디 영화로 한국 코미디 영화 중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다시 차기작인 <불어라 봄바람>이 고배를 마시며 영화감독의 길도 잠시 접어야 했습니다.

제2의 서막, 드라마 작가

<위기일발 풍년빌라>

<불어라 봄바람>의 실패 이후, 장항준 감독은 라디오, TV 영화 프로, TV 영화 제작, 대학교 강사 등을 하며 근근이 영화 경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드디어 재기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2010년, tvN 드라마인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시나리오를 김은희 작가와 공동집필하게 된 것이죠.

<싸인>
<드라마의 제왕>

김은희 작가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위기일발 풍년빌라>가 당시 케이블 드라마로써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1%를 넘기는 ‘대박’을 칩니다. 그리고 이듬해 SBS 드라마 <싸인>의 각본 공동집필과 연출을 맡으면서 지상파 방송에서도 성공을 거둡니다. 차기작인 <드라마의 제왕>까지 평균 시청률 8%대의 성적을 내며 본격적인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르죠.

<기억의 밤>

작가로써 성공한 장항준 감독은 최근 다시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2017년 <기억의 밤>의 연출과 각본을 모두 맡은 것이죠. 소름돋는 배우들의 연기와 몰입감 넘치는 전개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기억의 밤>은 130만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넘는 흥행을 거두며 감독으로써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습니다.

유재석의 픽, 예능계의 샛별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

장항준 감독의 입담과 예능감은 예전부터 방송가에서 유명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MBC FM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의 코너로 진행한 <장항준의 어수선한 영화이야기>는 청취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 코너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쇄도하기도 했었죠. 2017년에는 SBS 러브 FM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해 두 MC를 포복절도하게 하는 입담을 뽐낸 바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런 입담이 빛을 발해 작년부터는 SBS 시사교양예능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고정 스토리텔러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에서 장항준은 개그맨보다 재치있는 입담과 듣는 이를 몰입하게 하는 말솜씨로 큰 호평을 받으며 시즌 1에 이어 시즌 2에도 출연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라디오 스타>

<놀면 뭐하니?>

최근에는 아내 김은희 작가의 영향으로 <라디오 스타>, <놀면 뭐하니> 등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해 유명 MC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예능감을 발휘했습니다. 심지어 유재석은 장항준을 ‘예능 우량주’로 꼽기도 했죠. 많은 시청자들이 장항준의 소탈하면서 솔직한 입담과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는 ‘착한 개그’에 열광한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네티즌들은 장항준의 이런 행보에 불편하단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후광을 등 업고 연출된 모습으로 방송에 나온다고 말이죠. 그런데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요? 장항준의 지인들의 증언은 다릅니다. 절친인 윤종신은 장항준을 ‘20만 원 어치 선물을 주면 20만 원 어치 웃음을 주는 친구’라고 말하며 장항준의 입담을 칭찬하기도도 했었죠. 실제로 윤종신은 신인작가 시절의 장항준을 물심양면 도와주기도 했고, 장항준의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주제가를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장항준의 아내 사랑도 원래부터 남달랐습니다.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작가 김은희의 남편, 장항준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할뿐더러 아내 김은희 작가를 위해 모든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한 것은 이미 유명하죠. 게다가 여기에 아무런 불만도 없이 ‘근면 성실한 아내를 진심으로 존경한다’라고 말하기도 하니 완벽한 애처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