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대표했던 중화권 미남 스타 장국영은 현재까지 회자되는 홍콩의 대스타입니다. 그는 중화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 나아가 할리우드에서도 사랑을 받았는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 전지현도 그의 엄청난 팬이었으며 22년 전 그녀와 장국영의 만남이 최근 다시 재조명되었습니다. 그 시절 톱스타 장국영과 풋풋한 신인 전지현의 모습을 함께 확인해보도록 하죠.

무명 생활을 딛고 성공한
최정상 스타

1956년생인 장국영은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보내던 중 아버지의 반신마비로 학교를 중퇴하고 1976년부터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는 1977년 아시아 가요제에 참가하여 ‘American Pie’라는 곡으로 2위에 오르며 가수로 데뷔했는데요. 데뷔 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아시아 전역을 다니며 활동하기도 했죠.

1983년까지 그저 그런 무명 연예인 생활을 보내며 굴욕적인 시기를 보내야 했던 장국영은 힘들었던 과거를 발판 삼아 1984년 ‘MONICA’를 통해 가수로서 성공을 맞게 되고, 이어 그가 작곡한 ‘홍안백발’, ‘추’가 연속 히트를 치며 레전드 가수로 거듭나게 되죠.

가수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린 그는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화 <영웅 본색>에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영웅 본색>과 이듬해 출연한 <천녀유혼>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다른 배우들에게 기대서 성공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여 홍콩 영화 붐을 이끌었죠. 더하여 <천녀유혼>에서 왕조현과의 키스신은 현재까지 홍콩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키스신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칸까지 진출한 스타를 만난
신인

두 작품으로 ‘장국영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톱스타로 부상한 그는 1990년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했다가 2년 후 <가유희사>로 다시 스크린에 복귀했습니다. 이후 영화사상 최초로 중국 본토에서 제작된 영화에 홍콩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 <패왕별희>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죠. 이후에도 매년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배우 생활을 이어가며 전 세계적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전지현과 장국영은 1998년 SBS <특급 연예통신>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지현은 1997년 17살의 나이에 아는 모델 언니를 따라갔다가 패션잡지 ‘에꼴’의 표지모델로 발탁되어 연예계에 데뷔했는데요. 당시 싸이더스HQ 대표에 눈에 띈 그녀는 1년간 연기 수업을 받으며 여러 편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죠.

이듬해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에 캐스팅되면서 전지현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그녀는 데뷔 2년 만에 톱스타 장국영을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렸는데요. 당시 장국영의 엄청난 팬이었던 전지현은 인터뷰 전부터 엄청 긴장하고 흥분했다고 밝혔죠.

현재까지 회자되는
그와의 만남

18살 전지현은 그를 위해 장미꽃을 준비하고, 너무 긴장한 탓에 계속 NG를 내는 등 장국영을 영접한 ‘찐 덕후’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장국영은 방송 경력이 거의 없는 임시 리포터였던 전지현이 실수를 해도 따뜻한 미소로 응답하며 인터뷰를 이끌어주었죠.

인터뷰에서 전지현은 자신이 장국영을 ‘아빠, 아저씨, 오빠, 자기야’ 중에 어떤 호칭으로 부를지 고르라고 질문하고 장국영은 ‘아저씨’를 골라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전지현은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아저씨 오늘 점심 뭐 먹었어요?’라고 질문하며 행복에 가득 차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22년 전 영상이지만 현재까지 회자되는 이 인터뷰를 본 네티즌들은 ‘전지현이 부럽기는 또 처음이다’, ‘18살 말괄량이 전지현 너무 귀엽다’, ‘그 시절 장국영 외모 클라스’ 등의 반응을 보였죠.

한국을 방문한 1998년으로부터 5년 후, 장국영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9시간 만에 6명의 홍콩 팬이 그를 따라 투신하여 5명이 사망하기도 하였죠. 향년 46세로 우리의 곁을 떠난 장국영이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톱스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